秋史를 보는 10개의 눈
 










































5.여항인 閭巷人 : 일기명세 一技鳴世
사진 도서정보 조회수
501 해동유주ㆍ海東遺珠 1책 112
저역편자 : 洪世泰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활자본
해제 여항시인 홍세태(洪世泰)가 후대에 전할 만한 여항시인들의 시를 10여년 동안 수집하여 편찬한 여항인 시선집이다. 박계강(朴繼姜)을 비롯한 여항시인 48명의 시 230여수가 수록되어 있다. 『해동유주』는 이후 여항인 시선집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502 완암집ㆍ浣巖集 2책 중 1책 116
저역편자 : 鄭來僑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목판본
해제 완암(浣巖) 정래교(鄭來僑,1681-1757)의 시문집이다. 홍봉한(洪鳳漢,1713-1778)의 주선으로 1765년에 전라감영(全羅監營)에서 간행하였다.
503 창록유고ㆍ蒼麓遺稿 1책 85
저역편자 : 金時模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활자본
해제 여항시인 창록(蒼麓) 김시모(金時模)의 시집이다. 영조대의 문신 조명정(趙明鼎,1709-1779)이 서문을 썼다. 운각인서체자로 간행되었으며 국내에는 다른 전본이 확인되지 않는 희구본이다.
504 소대풍요ㆍ昭代風謠 2책 115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활자본
해제 채팽윤(蔡彭胤)과 고시언(高時彦)이 편찬한 조선후기 여항인의 시선집이다. 홍세태(洪世泰)의 『해동유주(海東遺珠)』를 토대로 증보하여 1737년에 간행했다. 이후 전본이 드물어지자 『풍요삼선(風謠三選)』 간행시 추가로 인쇄하였다. 전시된 책은 1857년에 간행된 중간본이다.
505 풍요속선ㆍ風謠續選 3책 109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운각활자
해제 『소대풍요』를 간행한지 60년만인 1797년에 천수경(千壽慶)이 편찬하고 장혼(張混)이 교정하여 운각활자로 간행한 여항인 시선집이다. 333명의 시 723수가 실려 있다.
506 풍요삼선ㆍ風謠三選 3책 96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활자본
해제 『풍요속선』을 간행한지 60년만인 1857년에 간행한 여항인 시선집이다. 305명의 시가 실려 있다.
507 호산외사ㆍ壺山外史 1책 143
저역편자 : 趙熙龍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필사본
해제 『호산외사』는 조희룡(趙熙龍)이 엮은 여항인들의 전기집이다. 중인, 화가, 승려 등 43인의 행적을 기록하였는데, 앞에는 1844년에 쓴 조희룡의 서문이 있다. 간행된 적은 없고 필사본이 전해왔는데, 기존의 필사본에는 모두 42인의 행적이 실려 있다. 이번에 전시된 『호산외사』는 조희룡이 죽기 전까지 수정을 했던 원본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기존의 사본에는 실려 있지 않았던 함진숭(咸鎭嵩)의 전기가 추가되어 있다. 따라서 총 43명의 행적이 실려 있다. 서명도 『호산외기』와 『호산외사』로 불려 왔는데, 이번에 공개된 원본에는 『호산외사』로 되어 있어 이를 따랐다. 『호산외사』는 이후 『진휘속고(震彙續考)』,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희조일사(熙朝軼事)』로 이어지는 여항인 전기집의 선구적 업적이란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저술이다.
508 희조일사ㆍ熙朝軼事 1책 94
저역편자 : 李慶民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활자본
해제 고종 때 이경민(李慶民,1814-1883)이 엮은 2권 1책의 여항인 전기집이다. 조희룡의 『호산외사(壺山外史)』,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을 잇는 대표적인 여항인 전기집이다.
509 송석원ㆍ松石園 사진 191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사진
해제 『풍요속선』을 편찬한 시인 천수경(千壽慶)이 옥류동(玉流洞, 지금의 종로구 옥인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자신의 호를 송석(松石)이라 하였다. 그곳은 인왕산 아래 깊숙한 골짜기로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뛰어나 여항인들이 모여 시를 짓곤 하였다. 천수경은 그곳을 송석원(松石園)이라 불렀다. 1817년에는 추사 김정희가 그곳에 있는 바위에 예서(隸書)로 크게 송석원(松石園)이라 썼다. 지금은 땅 속에 매몰되어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전시된 사진은 1910년대 초기에 윤덕영이 그곳에 별장을 짓고 벽수산장(碧樹山莊)이라 한 다음 찍은 사진으로 당시 송석원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절벽 위로 김정희가 쓴 ‘송석원’과 윤용구가 쓴 ‘벽수산장’ 글씨가 보인다. 크기:21*27Cm
510 왕태ㆍ王太의 글씨 111
저역편자 : 王太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필사
해제 왕태(王太)는 자가 보경(步庚), 호가 수리(數里)로 여항시인이다. 집이 가난하여 나이 스물에 술집의 일군이 되었다. 술을 나르다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주인 노파가 나무랐지만 왕태는 책을 품고 다니며 읽었으며, 혹은 아궁이 불에 비춰가며 묵묵히 글을 외웠다. 그러자 노파도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매일 초 한 자루씩 주어 밤에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윤행임(尹行恁)의 눈에 띄어 정조 앞에서 시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조령별장(鳥嶺別將)까지 지냈다.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시로 이름을 얻어 천수경(千壽慶)을 중심으로 한 장혼(張混), 조수삼(趙秀三), 박윤묵(朴允默) 등과 함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일원이 되었다. 추사는 조령진장으로 부임하는 왕태를 위해 송별시를 짓기도 하였다. 전시한 자료는 1824년 봄에 쓴 왕태(王太)의 친필 시고이다. 왕태의 육필로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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