茗禪 草衣展
 










































Ⅰ. 사승(師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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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연담 유일의 친필본 도서사기(都序私記) 135
저역편자 : 蓮潭有一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필사본
해제 연담유일(蓮潭有一,1720~1799)의 친필본 사기(私記)로, 지본 묵서이다. 정사(1797)년 3월에 썼는데 이는 연담이 열반하기 2년 전에 쓴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서첩의 원제는 『도서과목병입사기(都序科目幷入私記)』인데 이 서첩의 표제엔 ‘서요기(序要記)’라 하였다. 단권(單卷)으로, 연담의 「서요사기서(序要私記序)」가 들어 있고, ‘해동후학 유일찬(海東後學有一撰’이라는 관지가 있다. 연담은 대흥사 승려로 성은 천(千)씨, 자는 무이(無二), 연담(蓮潭)은 그의 법호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대둔사 12종사 중 한사람이다.
102 도서과목병입사기(都序科目幷入私記) 82
저역편자 : 蓮潭有一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목판본
해제 당나라 규산(圭山)이 지은 『도서별행록(都序別行錄)』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연담유일이 편찬했으며 1797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103 아암유집(兒庵遺集) 107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영인본
해제 혜장(惠藏,1772~1811)의 문집이다. 속성 김(金)이고 자 무진(無盡), 호는 연파(蓮坡) 또는 아암(兒庵)이다. 해남(海南) 두륜산(頭輪山)의 대둔사(大芚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다산(茶山), 추사(秋史) 등과 교유하였다. 전시된 책은 1920년에 신문관(新文館)에서 간행된 혜장 문집의 영인본이다.
104 아암서첩 184
저역편자 : 아암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서첩
해제 아암 혜장의 친필 서첩이다.
105 아암서첩 111
저역편자 : 혜장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서첩
해제 아암 혜장의 친필 서첩이다.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의 서풍에 영향을 주었다.
106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 115
저역편자 : 범해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신식연활자
해제 범해각안(梵海覺岸,1820~1896)의 문집이다. 1921년 임인월(林印月)이 편집과 간행을 맡았고 해남 대흥사에서 출판했다. 신식 연활자본으로 4권 2책이다. 범해는 대둔사에서 출가, 호의에게서 법(法)을 받았고 초의(草衣)에게서 대승계(大乘戒)를 받았다. 명은 각안(覺岸), 자는 환여(幻如), 청해인(淸海人), 호는 범해(梵海)이다. 초의의 다풍을 이어 「다약설(茶藥說)」, 「초의차(草衣茶)」, 「다가(茶歌)」, 「다구명(茶具銘)」, 「제다(題茶)」 등 여러 편의 다시(茶詩)를 남겼다. 그의 다시(茶詩)는 조선 후기 차의 활용과 대둔사 다풍(茶風)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저서로 『동사열전(東師列傳)』,『범해선사유고』등이 있다.
107 범해자서(梵海自序) 75
저역편자 : 범해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필사본
해제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붙인 범해의 친필 자서(自序)이다. 범해의 생애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사열전』의 자서와 같은 내용이지만 자서의 종구(終句)의 의준(儀準) 옆에 붉은 글씨로 보정(寶鼎)이라 보정(補正)하였고, 묘언(妙彦) 아래에는 서해(犀海)라 첨서(添書)했다. 따라서 『동사열전(東師列傳)』의 자서를 보정한 자서라는 것이다.
108 설두(雪竇)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90
저역편자 : 雪竇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이 편지는 설두유형(雪竇有炯,1824~1889)이 1845년 8월21일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백파(白坡,1767~1852)의 법손(法孫)으로 『선원소류(禪源遡流)』를 지어 백파의 선 입장을 옹호하여 초의의 선의 입장을 비판하였다. 이 편지 중간에 ‘명진 스님의 상을 당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109 운고(雲皐)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104
저역편자 : 雲皐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운고(雲皐)의 생몰은 알려지지 않았다. 범해의 『동사열전』「제봉선백전(霽峰禪伯傳)」에 “그의 법명은 운봉(雲峰), 호는 제봉(霽峰), 혹은 제산(霽山) 운사(雲史)”라 하였다. 본래 영남사람으로 전주 건봉사(乾峯寺)에 주석했다. 문장과 이름이 초의, 해붕(海鵬)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해붕의 제자로 <진묵조사어록>을 초의와 함께 교정하기도 했다. 이 편지는 1859년 4월 9일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초의는 74세였는데 연로했지만, 정신은 또렷했음이 확인된다.
110 석훈(碩訓)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 83
저역편자 : 碩訓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석훈은 대둔사 승려로, 그의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편지는 석훈이 1857년 8월16일 보낸 것이다. 편지 중간에 ‘초의가 완호의 비를 완성하기 위해 천리 밖에 계신다.’는 내용이 보인다. 당시 초의는 완호의 탑명뿐만 아니라 추사의 상전에 조문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이 편지로 당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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