茗禪 草衣展
 










































Ⅱ. 교유(交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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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다산첩(茶山帖) 148
저역편자 : 정약용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서첩
해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사미승에게 써 준 글이다. 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다. 승려라 해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를 사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하였다. 초의(草衣) 또한 이런 다산의 가르침을 통해 시문(詩文)과 학문(學問)에 뛰어난 학승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산은 일찍이 이 글에 보이는 화악선사(華嶽禪師)의 비명(碑銘)을 지은 적이 있다.(박철상)
202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 95
저역편자 : 정약용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필사본(전사본)
해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는 정약용이 편찬한 책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와 변천 과정을 폭 넓은 사료를 바탕으로 명료하게 서술한 불교사이다. 시헌서(時憲書) 이면지에 필사한 책이다. 누가 필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산의 제자인 윤동(尹峒)의 후발(後跋)이 있다. 초의의 유품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에는 초의 친필본 『대동선교고』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애장도서였음이 확인된다.
203 일속산방(一粟山房) 232
저역편자 : 정학연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서첩
해제 정학연의 친필 서첩이다. 그가 황상을 처음 만날 당시의 상황과 황상과 다산과의 인연을 상세히 기록했다. 황상의 일속산방이 지어진 시기와 사호암(四號菴)의 실명(實名)이 이 서첩을 통해 알려졌다. 즉, 동쪽이 석영옥(石影屋), 북쪽이 만고송실(萬古松室), 서쪽이 노학암(老學菴), 남쪽이 일속산방(一粟山房)이었다. 특히 김정희가 석영옥(石影屋)이라는 서재의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도 이 서첩을 통해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다산가와 황상의 상호관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황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204 정학연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 121
저역편자 : 정학연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초의는 1857년 추사를 조문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그 해 겨울을 과천 추사 댁에서 지내고 이듬해에 돌아갔다. 이 편지는 정학연이 전주 감영으로 보낸 것인데 편지 하단에 초의가 노자돈이 없어서 해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주감영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초의가 해남으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노자돈 3~4냥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청탁편지이다. 아울러 편지 첫 머리에 전주 아전 김재모(金在模)가 초의를 속이고 다산의 필첩을 가져다가 다산의 도장을 칼로 긁어내고 동기창이라 써서 팔았다 하는데, 초의의 이 억울한 일을 해결해 달라는 내용도 보인다.
205 정학유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178
저역편자 : 정학유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정학유(丁學游,1786~1855)의 아명은 학포(學圃), 문장(文牂)이고 자는 치구(穉求)로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다. 초의와는 강진에서부터 교유하였는데 특히 차를 좋아했던 인물이다. 이 편지는 1850년 3월23일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 중간에 오랫동안 병환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초의가 그와 운길산(雲吉山) 수종사(水鐘寺)에서 설경을 감상하던 옛일을 시를 지어 보낸 듯, 서로 그리워하는 정회를 간절히 회상하였다. 초의가 시와 함께 4포의 차를 보냈는데 얼른 차를 다려 마셨으며 차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지었다. 당시 이들의 깊은 정회는 차를 통해 이어졌음을 밝힐 수 있는 자료이다.
206 정대림(丁大林)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 183
저역편자 : 丁大林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정대림(1807~1895)은 정학연의 장남이다. 자는 사형(士衡), 호는 연사(蓮史)이다. 그는 초의와 대를 이어 교유하였다. 이 편지는 윤5월 24일에 쓴 것인데 어느 해인지는 분명치 않다. 초의와 작별 후 보낸 편지로, 편지의 하단에 ‘문자반야(文字般若)는 어제부터서 원고를 수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207 정대무(丁大懋)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110
저역편자 : 정대무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簡札
해제 정대무(1824~?)는 정학유의 큰 아들이다. 자는 자원(子園), 호는 연원(硯園)이다. 1858년 진사에 급제, 1867년에 북청현감에 나아갔다. 이 편지는 1860년 5월11일에 초의에게 보낸 것인데 가문에 불행하게도 백부의 상을 당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백부는 정학연이다. 정학연의 몰년(沒年)이 1859년이니 이 편지는 정학연의 기년(朞年)을 지낸 후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초의는 정대무에게 차를 보내 교유했다. 이를 통해 다산의 집안과 초의는 3대에 걸쳐 교유의 인연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8 이재의(李載毅) 선조고비유지(先祖考妃幽誌) 109
저역편자 : 李載毅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문고
해제 이재의(李載毅,1772∼1839)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문산(文山)이다. 초의선사와는 1831년에 김매순의 집에 함께 모여 시를 짓기도 하였다. 전시자료는 이재의가 친필로 쓴 할머니의 묘지문이다.
209 치원 황상의 초의행병소서(草衣行幷小序) 121
저역편자 : 黃裳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시고
해제 치원(巵園) 황상(黃裳,1788~1863)이 초의를 처음 만난 곳은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초의는 완호(玩虎,1758~1826)를 따라 운흥사에서 대둔사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때가 1809년이다. 당시 초의는 다산의 명성을 아암과 완호로부터 듣고 다산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는데 이때 황상은 초의를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교유는 이어지지 못한 채 40여년이 흘렀다. 1849년 두릉(斗陵)을 찾은 황상은 정학연의 소개로 김정희 형제들 및 권돈인(1783~1859)과 교유하게 된다. 당시 이들을 통해 초의의 소식을 들은 황상은 그 해 겨울, 일지암으로 초의를 찾았다. 황상은 일지암에서 하루를 지내며 초의에게 보낸 김정희의 유묵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일속산방으로 돌아온 황상은 초의에게 시를 써서 보냈다. 「초의행병소서(草衣行幷小序)」은 1849년 겨울 초의를 방문한 후 지어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이들의 교유가 40년 만에 재개되었다는 사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초의차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밝힐 수 있었다. 특히 “명선(茗禪)”이 추사가 초의에게 준 호였다는 사실도 그가 지은 「걸명시(乞茗詩)」를 통해 밝혀졌다. 황상은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기른 제자로, 다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다산의 시학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시에 능하다. 아전 출신으로 다산이 해배된 후 백적산 아래 일속산방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 평생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농가의 삼여(三餘)에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차를 즐긴 다인으로 초의에게 「걸명시(乞茗詩)」를 보내기도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박동춘의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일지사, 2010) 참조.
210 영명위묵적(永明尉墨蹟) 115
저역편자 : 黃裳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시고
해제 홍현주(洪顯周,1793~1865)는 정조(正祖)의 사위로 호는 해거재(海居齋)이다. 초의와 교분이 두터웠고, 『동다송』은 홍현주의 요청이 계기가 되어 저술되었다. 전시된 자료는 홍현주의 친필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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