茗禪 草衣展
 










































Ⅲ. 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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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일지암시고(一枝菴詩稿) 148
저역편자 : 초의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영인본
해제 1974년 보련각에서 영인한 4권 1책의 초의(草衣) 시집이다. 내제(內題)는 ‘초의시고(艸衣詩藁)’인데, 표지에는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이 ‘일지암시고(一枝盦詩藁)’라 쓴 제첨이 있다. 또한 봉면지에는 ‘초의음고(艸衣唫藁)’라 하였고, 좌우에는 ‘사십로각초본(四十鱸閣鈔本)’과 ‘일지암장(一枝盦藏)’이란 글자가 있다. 앞쪽에는 1831년에 쓴 홍석주(1774~1842)와 신위(1769~1845)의 서문이 있고, 뒤에는 윤치영(尹致英)의 발문, 1875년에 쓴 신헌구(申獻求,1823~1902)의 발문, 1851년에 쓴 신관호(1810~1884)의 발문이 있다. ‘사십로각(四十鱸閣)’이 정학연의 당호(堂號)란 점과 전체적인 책의 형태와 서체 등을 감안해 볼 때, 정학연이 정사(淨寫)하고 장황(裝潢)하여 초의에게 보내준 시집인데, 신헌구와 신관호의 발문만 후에 추가로 필사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박철상)
302 초의집(草衣集) 128
저역편자 : 초의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목활자본
해제 초의의 시문집이다. 1890년 4월 원응(圓應)의 간행 후발(後跋)이 들어 있는 목활자본이다. 상하 2책으로 상권과 하권의 중반까지는 『일지암시고』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하였고 하권의 중반부에서 종장에는 초의가 지은 문(文)을 함께 실었다. 신헌의 「초의대종사탑비명」이 들어 있다.
303 초의 친필 서첩 142
저역편자 : 초의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서첩
해제 초의 친필 서첩으로, 해서, 행서, 예서체로 시를 필사했다. 초의의 서체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04 漱瓊秋日-시축(詩軸) 111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詩軸
해제 이 시축은 초의가 1830년 상경했을 때 석포(石浦)와 수경(漱瓊), 담산(覃山), 석범(石帆), 초의, 계당(溪堂) 등과 함께 연 시회를 기록한 시축이라 여겨진다. 이들은 7언 율시를 짓고 말미에 각자의 호만을 부기했지만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 중 계당(溪堂)은 이만용의 아들 이지형(李之衡)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축의 중간쯤부터는 <기억황파(寄憶黃坡)>라는 시제로 다시 시회(詩會)를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부터는 초의의 친필이다. 황파(黃坡)는 정환표이다.
305 寄憶黃坡 -시축(詩軸) 103
저역편자 : -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詩軸
해제 이 시축은 초의가 1830년 상경했을 때 석포(石浦)와 수경(漱瓊), 담산(覃山), 석범(石帆), 초의, 계당(溪堂) 등과 함께 연 시회를 기록한 시축이라 여겨진다. 이들은 7언 율시를 짓고 말미에 각자의 호만을 부기했지만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 중 계당(溪堂)은 이만용의 아들 이지형(李之衡)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축의 중간쯤부터는 <기억황파(寄憶黃坡)>라는 시제로 다시 시회(詩會)를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부터는 초의의 친필이다. 황파(黃坡)는 정환표이다.
306 정환표(鄭煥杓) 시고 121
저역편자 : 정환표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시고
해제 정환표(鄭煥杓,1784〜?)는 호가 황파(黃坡)이며 1848년 진사시에 합격한 조선후기 시인이다. 그는 시를 잘 지었을 뿐만이 아니라, 시를 노래처럼 멋지게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이름이 있었다. 그는 특히 이만용(李晩用)과 아주 가까웠으며, 초의와도 시를 통해 교유하였다. 전시한 자료는 황파 정환표가 홍현주의 형님인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박철상)
307 청량산방아집시권(淸凉山房雅集詩卷) 112
저역편자 : 홍현주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詩軸
해제 1830년 완호의 탑명을 구하기 위해 두 번째 상경한 초의는 여러 사대부들과 교유를 확대하였다. 1831년 정월 중순, 홍현주의 별서인 청량산방에서는 홍현주(1793~1865), 윤정진(1792~?), 이만용(李晩用,1792~1863), 정학연(1783~1859), 홍희인(洪羲仁), 홍성모(洪成謨), 초의(草衣) 등 7인이 모여 시회를 열었다. 이 시회는 다음날 까지 이어졌다. 이 시회에서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 전시 자료이다. 당시 시회의 규정은 이 시권의 첫머리에 “청량산방에서 초의선사를 맞아 초봄의 아회(雅會)를 열었는데, 시어(詩語)에 불가어(佛家語)의 사용을 금하였다. 이 규칙을 어긴 사람은 벌주(罰酒) 한 대접을 마시게 한다.”고 하였다. 이 자료는 초의가 사대부들과 교유가 확대되었던 시점에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라는 점에서 초의와 사대부들의 교유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자료이다.
308 홍현주의 금선암 다반향초실 시권(詩卷) 111
저역편자 : 초의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詩軸
해제 이 시축은 홍현주 등 4인이 금선암 다반향초실에서 모여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이 시회는 1831년경에 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축의 첫 머리에 “아침에 조카인 애사(藹士, 洪祐吉)를 데리고 한북(漢北)에 있는 금선암(金仙菴)의 다반향초실(茶半香初室)로 초의(草衣)를 방문했는데, 황파(黃坡) 정환표(鄭煥杓)가 지팡이를 짚고 왔기에 다시 자리를 잡고 함께 시를 지었다”라 한 것을 통해 당시 이 시회에서는 홍현주, 홍우길(洪祐吉,1809~1890), 정환표, 초의 등이 모여 함께 시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의가 1830년 상경해 홍현주 주변의 인사들과도 깊은 교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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