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중국을 만나다
 











































필사본 고어대사전�� 편찬과 한글 어문 생활사 자료

박 재 연/선문대학교 중한번역문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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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사본 고어대사전

‘필사 문헌’이란 조선시대 한글 창제 이후 조선시대의 전통사회에서 손으로 쓴 한글 문헌 자료로서, 20세기 초까지 손으로 쓴 모든 한글 문헌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발견된 필사 문헌의 효시는 1464년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이다, 그 이후 필사 시기가 16․17세기까지 올라가는 문헌들은 왕실의 어필 언간 아니면, 순천김씨(順天金氏) 언간이나 현풍곽씨(玄風郭氏) 언간, 유시정(柳時定) 언간처럼 극소수 무덤에서 출토된 민간의 편지 정도였다.

조선시대 활자나 목판의 형태로 간행되었던 언해본들은 대부분 관찬(官撰)이었고, 식자층에서 많이 유통되었지만 일반 서민은 빌어다가 베껴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글 문헌은 일부 언해본을 제외하고는 간행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시의성 있거나 사적인 글들은 대부분 그때 그때 필사의 형태로 기록되고 유통되었다. 특히 문자가 없던 시기 중국의 한자를 빌어 의사 표현을 하던 조선시대에는 한문이 ‘진서(眞書)’로 여겨지고, 한글이 ‘언문(諺文)’이라 불렸던 것처럼 초기에 한글은 언제나 한문의 보조 수단으로 쓰인 문자였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내려올수록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나 서민들에게서 한글 필사 문헌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글은 민간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한글 관련 문헌은 관찬 언해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필사본으로 유통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필사 문헌을 발굴하고 탈초하여 옛 어휘를 하나하나 모으는 과정을 ‘티끌 모아 태산’이요, 희귀어를 찾기를 ‘모래 사장에서 금싸라기 줍기’라면, 쓸고 나서 되돌아 보면 우수수 떨어져 있는 낙엽을 쓸고 또 쓰는 것을 교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사전 편찬 작업은 1980년대 후반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명청소설(明淸小說) 번역본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고어 자료들을 차례로 정리하다가 1997년 한국고소설학회에서 ��낙선재본 소설 어휘 자료집��(86쪽)을 소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후 많은 번역소설들을 발굴하고 탈초, 입력 및 교주 작업하면서 보다 많은 표제어와 용례들을 추출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2001년에 표제어 1만여 개 정도의 소사전 형태의 고어사전을 편찬하였다. 지금 살펴보면 오류 투성이에 체재도 엉성하지만, 활자나 목판본 등 간본(刊本) 위주의 중세 자료를 중심으로 편찬되었던 기존의 고어사전과는 달리 18~19세기 필사본에서 뽑은 어휘가 중심이 되어 ‘근대국어 사전’의 성격이 짙다. 그리고 구어체의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와 많은 차용어를 실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 후 정리하지 못했던 장서각 소장 장편 번역 고소설 ��홍루몽(紅樓夢)��과 그 속서(續書)를 마저 정리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들 작품군에서는 어떠한 어휘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홍루몽 고어사전��도 편찬한 바 있다.

그와 동시에 본 연구소에서는 조선시대 번역 고문헌 자료를 활용하여 조선판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격인 ��中朝大辭典��도 간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2005년도에는 중점연구소로 선정되어 ‘한중 어문학 기초자료 활용을 통한 사전편찬 연구’를 수행하면서 ��한중소설 인명․지명 대사전��과 ��우리말 고어대사전�� 2종의 사전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 후자의 중간 결과로 나온 것이 가운데 ��필사본 고어대사전�� 이다.

이 사전의 편찬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각종 한글 필사 문헌에 나타나는 낱말과 문법적 요소들을 통합하여 표제어를 추출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용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말 고어의 총체적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그동안 1인이 1종의 번역소설을 정리하기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을, 국어학자들과의 공동 연구와 교열, 여러 전문 연구인력들의 투입으로 단기간에 많은 작업을 이룩해냄으로써 다양한 필사 문헌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근대 국어사 재구를 위한 고어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작업 또한 충실도를 더해 갈 수 있었다. 사전편찬 연구인만큼 소설이라는 특정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한글을 담고 있는 모든 필사 문헌들에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어휘의 광범위한 활용상을 적극 반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필사본 고어대사전��(2010)은 현재까지 총 200여 종 2,000여 책, 한글 편지와 고문서 1,000여 점의 문헌 자료를 수록하였다. ��필사본 고어대사전�� 편찬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 자료는 15세기~20세기 초까지의 종교류(불교, 도교), 기술 및 전문서류(의서, 역학서, 농서, 점서, 음식조리서), 역사서류, 고문류, 문학류(국문소설, 국문시가, 기행문), 한글 간찰류, 가장전기류, 자서류, 어휘주석집, 교화서류, 한글고문서류(고목, 상소문, 명문, 수기, 분재기, 장기),  물목(발기, 혼수 물목, 수연 물목) 등의 다양한 문헌들을 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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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번역․국문 고소설)

근대 국어 사전의 근간을 이루는 문헌은 필사본 번역소설들이다. 임란 전후로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소설은 영정조 때 이르러 그 전성기를 이루었고, 정조 때에는 문체반정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량으로 번역ㆍ전사되어 궁중 비빈, 궁녀뿐만 아니라 사대부 집안의 유한한 부녀자들에까지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세책방의 출현으로 일반 여항의 부녀자들까지도 중국소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소설 번역본을 보면 ��삼국지통쇽연의��를 비롯하여 ��홍루몽��과 그 속서에 이르기까지 30여 종에 이른다. 그리고 각처에 산장된 번역소설들을 함께 헤아리면 현재까지 확인되는 작품은 약 70여 종이다. 대부분의 중국소설들이 국내에 유입되었으며 그리고 상당수의 작품들이 번역ㆍ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소설 자료는 대개 필사본들로 번역시기 및 필사연대는 대부분 밝혀져 있지 않지만 나타나는 국어학적 특징, 여러 문헌에서 확인되는 번역소설의 유통 등을 고려하면 약 18~19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번역소설들은 필사시기 미상, 조기 백화로 된 원전자료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필사본 판독의 어려움,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전 어휘로 활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소설들은 한문 원전이 있어 번역문과 대조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어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국어사 자료이다.


3. 자서와 역학서

18, 19세기에는 실학의 영향으로 당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한자 어휘를 주제별로 분류한 한자어휘분류집인 물명(物名)이나 물보(物譜)가 크게 유행하였다. 다량의 어휘가 수록되어 있고 우리나라식 한자어 사용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유 한자어휘 및 고유어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의 역학 기관인 사역원(司譯院)에서는 시장 교류가 빈번한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위해 외국어로서의 한어 교육을 중시했고 운서와 역학서 편찬에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크게 직해류, 회화류, 사전류, 운서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역원에서 정식 편찬한 회화학습서인 ��노걸대(老乞大)��․��박통사(朴通事)��와 달리 조선시대 후기 19세기 초부터 민간에서 편찬된 중국어 학습서가 등장했다. 개인이 편찬한 한어회화서 자료들은 편찬자의 중국어 구사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혹은 동음자나 조선어 음차자로 대체해서 사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된 한어회화서들은 조선 상인이 동북 변경에서부터 북경으로 물건을 팔러 가면서 그 길에 중국 상인가 객점 주인, 차주 등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구성된 무역 중국어 회화서이기 때문에, 그 당시 중국에서 쓰인 일상생활에서의 구어를 충실하게 담고 있으며 동북 관화의 특색을 가지고 있어 언어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또한 이 자료들은 자료적 희소성으로 인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지며, 한중 교류사 및 변경 무역, 경제사 사회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4. 실용서

의서로는 ��태산집요언해(胎産集要諺解)�� ��태교신긔신해(胎敎新記諺解)�� 등의 전사본과 각종 경험방, 약방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에 관한 의서로 ��마경초집언해��가 있다면,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에 대한 의서가 ��우의책��이다. 특히 ��마경초집언해��는 이서(李曙 1580��1637)가 종래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마의방(馬醫方)과 명나라의 마경대전(馬經大全)을 초집 언해한 수의학서이다. 이밖에도 상례에 필요한 ��상례언해초��와 ��당사주(唐四柱)�� 같은 점책들이 이에 해당된다. ��당사주��는 당나라 때 이허중(李虛中)이 창안한 사주라 해서 당사주라고 하는데, 일반사주와는 달리 사람의 생년 생월 생시를 천상에 있다고 하는 12성의 운행에 따라 인생의 길흉을 점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민간의 신앙으로 발전되어 이허중의 원문에 그림을 삽화하여 서민들이 알기 쉽게 하였다. 이에 따르면 일생을 초년․중년․말년․평생 등 4단계로 구분하고 인명․골격․유년․행운․심성․12살(煞)․부모․형제․부부․자녀․직업․길흉․가택․신상․관살(關煞)․수명 등 인간생활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사항이 모두 들어가 있어, 사람의 일생을 예견하고 자기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되게 하였다.


5. 고문서

고문서에는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나 돈의 액수를 기록한 도지기(賭地記), 토지 매매 명문, 노비 매매 명문, 한글 배지(牌旨),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던 ‘표문(表文)’, 하인․노비 등 아랫사람이 상전에게 올리는 문안 혹은 보고 형식의 문서인 고목(告目), 매매․대차․기탁․약속 등을 할 때 당사자 간에 주고받는 증서로 확인서․서약서․각서의 성격을 띤 수표(手票), 청원이나 진정이나 고소장을 한글로 쓴 언문단자(諺文單子)가 있다.

옛날에는 일상생활에 가장 긴요한 것이 아마도 음식과 옷일 것이다. 의복에 관한 한글 자료에는 언간을 비롯하여, 혼수물목(婚需物目), 수연물목(壽宴物目), 의양단자, 버선본 등이 있다. 요즘 혼례에서는 신부 집에서 신랑에게 양복을 맞추어 준다. 전통 사회에서도 혼인을 준비할 때 신랑의 도포를 신부집에서 지어 주었다. 이 때 도포가 신랑 몸에 맞도록 도포 치수를 종이에 적어서 신부집에 보냈다. 이것을 의양단자(衣樣單子)라 한다. 혼수물목은 말 그대로 시집갈 때 준비해 가는 혼수품 물목인데, 시할머니께 따로 준비해 가는 시조모 물목이 포함되기도 한다. 수연물목은 환갑 잔치 때 바치는 예물인데 주로 의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밖에도 점괘(占卦), 병점(病占) 등이 있다. 해마다 돌아오는 가족 구성원의 생신날이나 제삿날을 적은 생신과 기일 단자,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는 제문(祭文)이 있다. 그리고 상행위와 관련하여 도매상 상거래 회계문서인 장기(掌記)가 있다.


6. 한글 간찰

우리의 옛 편지는 크게 한문으로 작성된 것과 한글로 작성된 것이 있었다. 그런데 한문으로 작성된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계층 신분 학력 등이 좁게 국한된 것이라 거기에 담긴 내용도 풍부하고 다양한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에 한글로 작성된 것은 그와 사정이 달랐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폭이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넓었고, 여기에 담긴 내용도 지극히 심오한 교훈을 깨우쳐 말하는 것으로부터 지극히 사소한 일상사를 따져서 밝히는 것까지 모두 적혔다. 한글 간찰은 조선시대 일상 언어를 고루 잘 반영하고 있는 까닭에 학술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예컨대 국어사, 생활사 그리고 여성사를 위시하여, 한글 간찰이 한국학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글 간찰은 후대로 갈수록 난해한 흘림체 글씨로 되어 있는 까닭에 이것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독해 능력과 숙련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비록 그것을 읽어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옛말과 한글 간찰의 독특한 투식에 대한 식견이 없으면 그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한글 간찰을 사전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전 자료를 정확하게 판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에 한글 편지는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 동생이 형이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 사위가 장모에게 보내는 편지, 첩이 영감에게 보내는 편지, 사돈이 주고받는 편지 등 다양하다.


7. 기타

소설 외의 문학 작품으로 당시(唐詩) 번역본인 ��당해(唐解)�� ��석민(釋悶)��, ��장편(長篇)�� 등과 가사가 있다. 여성교육서로 ��어제내훈(御製內訓)��․��규문수지(閨門須知)��, 어린이 교육서로 ��한글명심보감��, 도교와 관련된 권선서(勸善書)로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 있다. 여행기로는 제주도를 떠난 배가 풍랑을 만나 떠내려가 중국 남방에 이르렀다가 다시 육로로 조선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보고 들은 견문을 적은 ��표해록(漂海錄)��, 그리고 임금이나 조상의 사실을 기록한 실기(實記)나 유사(遺事)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단종왕육신실기(端宗大王六臣實記)�� (일명 ��노릉지(魯陵志)��)와 치열한 권력 암투에서 희생당한 아버지의 일대기를 한문으로 짓고 이것을 번역한 ��션부군유(先府君遺事)��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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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란 인문학자가 이룩해낼 수 있는 콘텐츠화 연구의 본령이자 향후 새로운 콘텐츠 창출의 광맥이 될 수 있는 상당히 이상적인 모델이다. 원전자료 판독의 어려움과 필사 연대 미상, 방대한 분량 등의 이유로 국어사 연구나 사전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필사본 자료들을 망라해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현실감 있는 고어 사용 실태를 확인할 수도 있고 기존 고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던 새로운 어휘들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번역소설 문헌들이 중국소설사적ㆍ한국고소설사적ㆍ비교문학적으로 논의되었던 기존의 연구를 벗어나 다양한 필사 문헌들이 사전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동안 한글 필사 문헌에 대한 많은 정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연구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금번 화봉 갤러리에서는 사전 편찬에 활용되었던 한글 필사 문헌을 한자리에 모아 특별기획전을 열게 되었다. 아무쪼록 이번 전시회가 한글 어문 생활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며 새로운 자료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 국학 연구에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귀한 자료를 출품해 주신 소장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참고문헌】

백두현(2007), 「한글 필사본의 필사기류에 나타난 조선시대 사람들의 문자생활」, 제25회 한말연구학회 전국학술대회 발표집.

이광호(2009), ��조선 후기 한글 간찰의 역주 연구��, 태학사.

이상규(2011), ��한글 고문서 연구��, 도서출판 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