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화봉현장경매
 




























정기적으로 두달에 한번씩 열리는 화봉 현장경매(HB Off-line Auction)!
출품해주신 상품은 화봉문고에서 해제와 사진작업을 진행 후 경매에 등록됩니다.
수시로 출품접수를 받고있으니 많은 참여와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출품마감: 2014. 5. 17(토)     경매전시: 2014. 6. 18(수)~6. 21(토)     경매일시: 2014. 6. 21(토) 오후 3시

번호 사진 물품정보 & 가격 조회수
2-050
조지훈∙방종현∙이숭녕∙이희승 등의 글이 있는
國語學槪論 출판기념 방명록ㆍ국어학개론 출판기념 방명록
178
저역편자 : 출판년도 : 1950
출판사 : 인쇄판식 : 筆寫
[해 제]
金亨奎선생의 國語學槪論 출판기념회 방명록.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을 비롯하여 국어학자 方鍾鉉, 李正浩, 一梧 具滋均, 국문학개론을 공저한 高晶玉, 국어학자 心岳 李崇寧, 국어국문학자 一石 李熙昇 등이 축하글과 이름을 남겼다. 국어학개론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첫번째의 개론서이다.

김형규(1911∼1996) 1953년 이후로 國語審議會위원으로 여러 번 임명된 바 있으며, 1988년에는 국어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4년간 역임하였다. 일생 동안 국어학 연구를 행하면서 국어교육자를 양성하였고 국어정책 발전에 힘썼으며, 나아가서는 語文을 바탕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상태B급. 韓裝包匣. 16面. 크기: 8.9×28.6cm.
   평가액: 600,000 원
2-049
독도가 조선땅으로 표기된
三國通覽圖說 幷 附圖(1冊ㆍ5圖)ㆍ삼국통람도설 병 부도
171
저역편자 : 林子平 述 출판년도 : 1786-1792
출판사 : - 인쇄판식 : 彩色筆寫
[해 제]
일본의 유학자 林子平이 목판으로 제작한 지도를 후에 필사한 일본,조선 등 주변 국가의 지도. 독도(竹島)를 조선과 같은 노란색으로 칠하고 「朝鮮ノ持也」로 표기하여 조선영토로 표기하였다. 이 지도는 일본의 유학자 林子平이 1785년 센다이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나 에도정부로부터 판금처분을 받아 전량 몰수되어 현재 인쇄본은 일본 전국에 20여첩 남아있는 귀중본이다. 寬政四年壬子冬 正月.

①三國通覽圖說(46+5) 장 : 17.5×27.3cm.
②數國接壤之小圖: 51×72.5cm.
③朝鮮八道之圖: 51×73cm.
④蝦夷國全圖: 51×90cm.
⑤無人島圖: 51×67cm.
⑥琉球三省幷三十六島圖: 51×70.5cm
상태B급. 韓裝包匣.
 평가액: 15,000,000 원
2-048
18세기 후반의 학자ㆍ천주교도
李基讓 簡札ㆍ이기양 간찰
181
저역편자 : 李基讓 출판년도 : [1782.9](壬寅)
출판사 : - 인쇄판식 : 筆寫
[해 제]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기양의 간찰이다.

이기양(1744-1802) 조선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도이다. 본관은 廣州, 자 士興, 호 伏菴. 본관은 廣州이며 李德馨의 7대손이다. 1800년 進賀副使로 청나라에 가서 천주교 교리를 직접 접하고 귀국하여 李家煥·李檗 등과 사귀었다. 은밀히 천주교를 신봉하였으나 겉으로는 南人攻西派와 친분을 가짐으로써 서학 반대자로서 자처했다. 병조참판·우승지·한성부우윤을 거쳐 1801년에는 대사간·예조참판·좌승지를 역임하였다. 安鼎福은 그가 천주학에 빠져들자 장문의 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들 寵億이 신자였던 관계로 반대파들은 그를 邪學의 교주라고 비난하였다. 그 자신도 친국소에서 무답으로 응하여 단천에 유배되었다. 죽은 후인 1809년 영의정 金載瓚의 요청으로 伸寃되었다. 저서로는 『복암유고』가 있다.

상태B급. 크기: 51.4×37cm. 26_1_3
    평가액: 1,200,000 원
2-047
나계 조사석의 친필원고로 추정되는
蘿溪遺稿(卷一-五) 5冊ㆍ나계유고
205
저역편자 : [趙師錫]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筆寫
[해 제]
조선후기의 문신 蘿溪 趙師錫의 흩어진 詩文을 모은 목판원고지 필사본으로 추정되나 序나 跋이 없어 정확한 경위를 알 수 없다. 조사석의 문집은 출간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권1-2에는 詩, 권3-5에는 疏箚(상소문) 등이 실려 있다.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조사석(1632~1693) 본관은 楊州, 자는 公擧, 호는 晩悔·晩休·香山·蘿溪, 시호는 忠憲이다. 형조판서를 지낸 조계원과 신흠의 딸 신씨 사이에서 5남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사촌동생이자 조태구의 아버지이며 조태억의 숙부이다. 166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2년 增廣文科에 을과로 급제, 檢閱·奉敎·正言·司書·이조정랑을 거쳐 황해·강원·경기도 등의 관찰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87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승진했을 때 金萬重이 조사석과 張禧嬪의 어머니와의 오랜 戀聞을 왕에게 알렸으나 도리어 김만중이 처벌되었다. 1688년 좌의정이 되었으나, 숙종의 숙부인 東平君 杭의 전횡을 비판해 처벌받은 朴世采·南九萬 등을 변호하여 숙종의 노여움을 산 뒤 사직하였다. 1689년 敦寧府領事에 올랐으나, 1690년 東宮 冊封賀禮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固城에 유배되어 2년 뒤 배소에서 죽었다.

상태B급. 일부분 얼룩. 총 426장. 크기: 17.3×27.7cm. 26_4_13
   평가액: 6,000,000 원
2-046
추사 김정희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진
黃草嶺眞興王巡狩碑, 黃草嶺眞興王巡狩碑移轉碑文 2帖ㆍ
황초령진흥왕순수비, 황초령진흥왕순수비이전비문
188
저역편자 : 출판년도 : 568-1852 立
출판사 : 인쇄판식 :
[해 제]
1.黃草嶺眞興王巡狩碑ㆍ황초령진흥왕순수비
    함흥에 있는 신라 28대 진흥왕 순수비 탁본. 추사 김정희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졌다. 민정을 시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함흥의 황초령비 외에도 북한산 순수비, 창녕순수비, 함경도 마운령순수비 등 4개가 발견되었다. 황초령비는 원래 함남 장진군 황초령의 꼭대기에 있던 것을 철종 3년(1852) 차령진으로 옮겼으며 이후 함흥 본궁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 국보 107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1.15m, 넓이 0.48m, 두께 0.21m의 화강암으로 1줄에 35자씩 12행의 비문이 해서체와 예서체로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변경을 순수(巡狩)한 사실과 정복지에 대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새겨져 있고 수행한 사람들의 이름이 관직과 함께 새겨져 있다. 추사의 金石過眼錄에 咸興 眞興王巡狩碑와 僧伽(北漢山)眞興王巡狩碑의 조사ㆍ연구 기록이 수록되었다.

2.黃草嶺眞興王巡狩碑移轉碑文ㆍ황초령진흥왕순수비이전비문
   추사 김정희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진 황초령 진흥황 순수비는 함남 장진군 황초령의 꼭대기에 있던 것을 철종 3년(1852) 함경도 관찰사 윤정현이 차령진으로 옮겼는데 이 사실을 기록한 비문의 탁본이다. 이 때 추사도 헌종의 묘천 문제로 1851년 북청에 유배되었다가 1852년에 풀려나왔는데 비문의 서체나 추사와 윤정현의 관계로 봐서 이 비문을 추사가 찬서하고 윤정현의 이름으로 비를 세우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眞興戊子後一千二百八十五年壬子秋 觀察使尹正鉉 序.

상태양호. 족자. 크기: 52×108 cm. (이전비문) 51.5×108.7 cm.
    평가액: 10,000,000 원
2-045
조선해가 명시된 1749년도 프랑스 발간
HISTOIRE GENERALE DES VOYAGES TOME VINGT-CINQUIE'MEㆍ여행통사 제25권
139
저역편자 : by Antoine Francois Abbe Prevost, with(maps and views) Jacques Nicolas Bellin 출판년도 : 1749
출판사 : a paris, chez didot libraire quai des auguftins à la bible d'or. 인쇄판식 :
[해 제]
1749년 프랑스에 발간된 여행통사(Histoire generale des voyages) 25권. 당시 타르타르 지방에 대한 지리,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지도에는 조선을 ‘조선왕국’이라고 표기하면서 동해를 조선해 (mer de Coree)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지역민들을 그림 동판화 4점, 한반도 국가 등 지도 3점, 티벳 지도 1점, 푸탈라궁 1점, 티벳사원 그림 1점 등 총 10점의 동판화가 실려 있다.

상태B급. 가죽 금박장정. 427P. 크기: 10×17.2cm. 26_3_1
   평가액: 1,500,000 원
2-044
題 知樂亭 懸板ㆍ제 지락정 현판 140
저역편자 : 朴永元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懸板
[해 제]
조선후기의 문신 박영원이 함경도 함흥10경 중 하나인 知樂亭이라는 정자에 대해 쓴 시를 현판으로 만든 것으로, 박영원의 문집《梧墅集》에 題知樂亭이라고 되어 있다. 오른쪽의 시는 1829년 明川府使로 갔을 때 이 정자에서 묵으면서 지은 시이고, 왼쪽의 시는 1849년 오른쪽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박영원은 1948년 함경도관찰사로 임명되어 다시 함흥 지역에 간 사실이 있다. 시의 마지막 구절 藥翁은 함흥10경과 북관10경에 대한 글을 남긴 藥泉 南九萬(1629-1711)을 의미한다. 註[右己丑季秋, 以明川守, 過宿此亭作.], 註[右己酉首夏, 用前韻續題.] 印記: 朴永元印.

朴永元(1791-1854) 본관 高靈. 자는 聖氣, 호는 梧墅. 1813년 사마시를 거쳐 181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假注書로서 經筵官이 되었고, 승문원에 보임되어 淸要職을 두루 지냈다. 1844년에 호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이듬해에는 遠接使가 되었다. 1846년에 進賀 兼 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11월에는 金興根과 함께 國朝寶鑑纂輯廳校正堂上을 제수받았다. 1848년 西洋船의 출몰로 동해안지방의 민심이 소란해지자 함경도관찰사로 특임되었다. 그 뒤 철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에 올라 實錄廳摠裁官을 겸하였다.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4월에 소를 올려 그 직을 사임하였다. 1854년 12월에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文翼이다.

상태B급. 懸板. 크기: 74.5×40cm. 26_10_5
   평가액: 6,000,000 원
2-043
般若波羅蜜多心經ㆍ반야바라밀다심경 172
저역편자 : 檀波居士 書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拓本
[해 제]
秋史 金正喜가 草衣禪師를 위해 써 주었다고 전해지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의 탑본첩이다.

상태B급. 절첩본. 31면. 크기: 19.7×33.5cm. 26_7_2
   평가액: 300,000 원
2-042
생각 130
저역편자 : 김지희 출판년도 : 2014
출판사 : 인쇄판식 : pigment print
[해 제]
김지희 작가는 생생한 색채, 함축적 기호와 텍스트라는 작가만의 필터를 통해 개인의 체험에서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의 고찰로 확장되어 보여진다.

김지희
서울여대 현대미술과 졸업.
단체전 청색시대_blue in art 등 3회.

상태양호. 크기: 92×118cm.
    평가액: 2,000,000 원
2-041
조선후기의 대실학자
茶山 丁若鏞 簡札ㆍ정약용 간찰
269
저역편자 : 丁若鏞 출판년도 : -
출판사 : - 인쇄판식 : 筆寫
[해 제]
조선후기의 학자 茶山 丁若鏞이 山北書齋라는 당호를 쓰는 사람에게 보낸 간찰로 추정되며 자신의 건강에 대한 언급과 다른 사람의 인품에 대한 품평이 나타난다. [若鏞頓首 十二月十一日]

정약용(1762~1836) 본관은 羅州, 호는 茶山·俟菴·與猶堂·菜山. 경기도 楊根(남양주) 출생. 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활동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西學으로 인해 장기간(18년)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상태B급. 유리액자표구. 크기: 44×23.5cm. 26_1_1
    평가액: 12,0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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