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1. 춘향전의 원류와 작품세계


설 성 경

1. 들머리

  춘향전은 성립 이래 360백년이라는 예술사적 자취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긴 역사를 지닌 춘향전은 20세기 현대화의 격랑을 견디고 이제 다시 21세기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또 한 번의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소설로 시작한 춘향전이 판소리를 거쳐 다양한 현대 예술로 재형상화 되고 생활 문화 속에 스며든 총체적인 실상을 살펴보고, 춘향전에 깔려있는 본질과 그 민족적 미학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민족예술에 대한 보다 진지한 애정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춘향전이란 이름으로 창작되고 재현된 예술들의 외형만이 아니라, 춘향전사에 기여한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함께 살펴보게 된다면, 춘향전을 통한 우리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춘향전에 담긴 춘향정신 속에는 민족혼이 교묘하게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드러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민족문화의 원형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들은 춘향전에 대한 전문 지식의 뒷받침 하에서 춘향전이 어떻게 성립 되었으며, 성립 이후에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가지지 못하였다. 이런 아쉬움과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이번 춘향전전시의 몇 가지 의도 중에 하나이다.
이런 조건들을 전제로, 이 글에서는 우리 민족 예술사의 대표작인 작품인 춘향전의 원류와 재창조에 나타난 큰 흐름을 살펴보도록 한다.


2.원춘향전의 성립 배경

   산서 조경남은 임병양란 이후, 신의의 상실과 부패한 관리들을 풍자하기 위하여 암행어사가 된 제자 계서 성이성의 이야기를 소설화하였다. 그는 역사 중심의 일기체의 서술인 「난중잡록」과 「속잡록」을 편찬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조경남은 「역대요람」이라는 역사 요약서에서는 남효온의 「육신전(六臣傳)」을 전문 소개하는 등 서사기록 특히 소설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었다.
조경남은 지난 시대의 역사를 편찬하면서 왕위 찬탈이나, 불의한 침략에 맞서 싸우는 충신들의 지조와 절의를 칭송하고, 그 공덕을 기렸다. 이런 태도는 「난중잡록」과 「속잡록」에서는 임병양란을 거치면서 급격히 무너져 가는 사회기강을 바로잡아 더 이상 국권이 흔들리는 불행한 사태를 막으려는 전란후의 조선 현실을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경남의 활동과 여러 가지 저작물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자신이 길러낸 제자의 정신세계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춘향전」를 창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한 사례를 들어보면, 그는 성안의 남원부사의 요청으로 사또의 어린 자제 성이성을 데리고 지리산 송림사로 들어가 과거를 위한 공부를 시킨 일이 있다. 조경남은 당대 유가 철학자의 학문을 계승하면서, 과거 시험의 기술적인인 면만이 아니라, 절의와 신의를 어린 제자에게 가르치면서 치자들이 추구해야 할 유가적 덕목을 교육하였다.
이 즈음에 성안의 부사가 남원에서 선치를 하고 광주목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그의 제자 책방도령 성이성은 부친을 따라 남원을 떠나갔다. 그러나 그 후에 제자 성이성은 호남 지역의 암행어사가 되어 조경남을 찾아와서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 이때, 어사가 되어 방문한 제자의 태도에 감동을 받은 옛스승인 조경남은 성어사와 만남 광한루에서의 사건을 계기로, 제자의 어린 시절과 암행어사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허구적 연애담을 담은 것이 원춘향전의 출발로 추정된다.
작가 조경남은 당시로서는 역사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 자기 자기 참회가 백성으로서는 기생도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열녀가 되는 춘향정신의 회복이 상실한 민족정신의 회복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에 대한 깨우침으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방황하던 이도령이 춘향과의 이별 후에 학업에 매진하여 자기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장원급제 후에 암행어사로서 억울한 백성을 구원하는 충신으로 서술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춘향전」의 기생 춘향을 열녀로, 방황하는 책방도령을 암행어사로 설정한 것은 기생 춘향의 열녀화와 책방 도령의 어사화를 통해 천민, 서민으로부터 양반, 관료들이 정신적으로 거듭나야 함을 일깨어주는 메시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작가 조경남은 춘향의 삶을 통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권력 중심의 인물들이 백성들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함을 일깨웠다. 그래서 춘향의 절개와 저항은 양란과 폭정의 고통을, 그리고 그들이 견디어낸 불굴의 정신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양란의 최대의 피해자인 여성을 비롯한 하층민에 대한 보상과 위로의 의미까지 담아내었다. 그 결과, 작가는 「춘향전」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쟁과 그 고통, 그리고 고통을 감내하며 새 삶을 꾸려갈 힘과 새로운 희망을 얻게 해준다. 이런 소망의 세계를 기생이면서 열녀인 춘향은 통쾌하게 해소시켜 준다.
또, 「춘향전」의 열녀화와 어사화는 개인에서 집단화로서의 확장의 원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열녀와 어사의 거대용량 속에 포함되는 사랑과 절개의 의미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춘향전이 지닌 의미 확산의 특수성은 남원에서 일어난 기생 춘향이야기, 특히, 기생 춘향이 열녀가 되고, 책방 도령이 어사가 되는 기본 구도는 그 의미를 남원이란 한 지역의 문제로, 기생 춘향이란 한 개인의 문제로 그 의미를 제한되지 않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춘향전」의 갈등은 변부사가 평범한 기생 한 명을 처형하였고, 책방 도령이 평범한 부사 한 명을 징치한 것 이상의 당대 사회 갈등의 한 전형을 이루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조경남은 외적에게 나라를 유린당하는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소망하고 원초의 춘향전을 창작하였다고 추정된다.


3. 판소리를 통한 「춘향전」의 재형상

  18세기 광대들은 소설로 전하던 원춘향전을 근거로 하여 이 이야기를 보다 소리극인 판소리로 전환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750년대에는 판소리를 듣고 그 소리극의 내용을 한시로 남긴 유진한의 한시를 통해서 확인된다.
판소리로 확장된「춘향전」는 열녀 사건과 도령을 중심으로 한 암행어사 사건이란 두 이야기가 사랑의 실천이란 순수 애정담으로 전후반의 대응을 보이며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의 하강적 삶의 구조를 반영한 전반부는 사랑과 이별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흥진비래(興盡悲來)의 관습적 인과율을 반영한다. 이에 대응하는 후반부는 시련과 보상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관습적 인과율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변부사의 수청 요구에 맞서는 춘향의 수절 논리나 감옥에 갇힌 춘향을 구원하는 이도령의 구원 행위는 제도적 현실의 맥락에서는 구체적 계기를 초월하는 비현실적인 것이지만, 예술적 향유의 측면에서 본다면 현실 논리와 구분되는 예술의 논리로서 존재한다. 이 예술적 논리는 수용자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춘향전」의 핵심 사건인 사랑, 이별, 시련, 보상의 네 사건은 일반 희곡의 기본 전개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해소의 정형적 틀을 그 밑바탕으로 깔고 있다. 이런 희곡의 탄탄한 구성 위에 진행되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는, 사랑 그 자체가 이미 문학의 보편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독자의 영속적 관심을 지닐 수 있는 내용을 구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극적 전개 속에 서정성과 서사성의 축까지도 아울러 포괄함으로써, 작품의 양식적 폭을 확장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문예미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춘향전」의 사설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춘향과 이도령의 행동이 표상하는 의미이다. 춘향은 가냘픈 여인의 몸이지만 사또와 당당히 맞서며, 정렬에는 신분의 높낮음이 있을 수 없음을 부르짖는데, 이는 약한 자의 항변이자 불의한 권력에 대한 냉엄한 도전의 의미를 표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아울러 포악한 사또를 징치하는 이도령의 어사출도를 통한 큰 전환은 기층 민중에 의한 과격하고 급진적인 변혁이라기 보다는 이도령으로 대표되는 정직한 권력에 의해 변부사로 표상되는 불의한 권력의 축출이라는 의미를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계급을 초월한 춘향과의 만남과 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정직한 권력자로서 이어사가 보수적 관념에서 벗어나 고귀한 순수성을 지향하는 존재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탁월한 창우인 명창들은 이런 극적 구성을 지닌 「춘향전」를 사설로 삼으면서 창우로서의 소리와 사설, 발림을 예술혼으로 만든 용광로 속에 달구고 다듬어내었다. 그들은 천변만화의 변용을 거치면서 끝임 없이 새롭게 발전적으로 재생산하며 지속적으로 그 예술적 멋을 유지하려고 피를 토하며 소리의 수련을 하였다. 신기에 근접하는 음악에 사실감이 얹힌 이야기를 엮어 희로애락의 두 절정인 한과 흥의 정감을 일구어 낸다. 이런 단장의 눈물을 흐르게 하는 한의 점감과 이를 씻어주는 웃음이라는 흥의 정감이 대립을 넘어 하나가 되며 만들어내는 극적인 반전 대목에서 만들어지는 신명은 단순한 행복의 결말과 구분되는 독특한 심리적 정화 기능을 해준다.
판소리 「춘향전」가 종합예술적 측면이나 또는 그 하위 갈래로서의 음악적 측면과는 달리, 그 문학적 요소로서의 사설이 분화되어 소설 양식으로 되돌아온 것이 판소리 이후 성립된 소설 텍스트이다. 즉, 소설 양식의 영역에 새로운 갈래로서 판소리 사설을 수용하여 더욱 세련된 소설로 나타난 춘향전은 창작계의 소설 중에서 핵심을 이루던 군담계 영웅소설과 개성을 달리하는 새로운 소설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 「춘향전」의 핵심 사건들은 각각 정감적인 분위기를 달리하여 교체되면서 정감의 변화에 따른 갖가지 미감으로 예술적인 감흥을 고조시키게 된다. 즉, 만남 대목에서 시작되는 봄이라는 자연계절과 젊음이라는 시기에 따른 자연적 흥은 사랑 대목에서 두 번째의 개인적 흥로 발전하고, 이는 다시 이별 대목에서 개인적 한으로 교체됨으로써, 전반부는 기쁨으로의 상승을 거쳐 슬픔으로의 하강에 이르는 정감의 기복에 따른 변화의 미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반하여 후반부는 여자 주역인 지방에 있는 춘향의 시련은 이별에 의한 전반부의 개인적 한이 집단적인 한으로 발전한다. 또 같은 시간대에 남자 주역인 서울에 있는 도령의 출세는 이별에서 맛본 개인적 한과 아주 대극적인 세 번째 집단적 흥으로 반전되게 함으로써 양반 집안의 남자 주역의 현실과 기생 집안의 여자 주역의 현실이 주는 거리감의 격차를 극대화시킨다. 이렇게 하여 춘향의 슬픔을 더욱 개성화하며, 그의 구원을 예고해주는 기능도 함께하게 된다. 전반에서 자아내는 정감의 상승과 하강의 질량감에 비하여 후반의 하강에서 상승으로의 전개에서 자아내는 정감의 질량감은 전반보다 더 강화된 것이다.
이런 정감의 미학은 판소리「춘향전」에서 크게는 전후반부의 상반된 구성을 보인다. 전후반부는 흥과 한이란 감성구조를 대비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오랜 전승에 따른 유파별 개성은 장면 중심의 플롯과 극적 상황의 독자성을 보이기도 하면서, 각각의 특성에 의한 독특한 감성미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판소리 창자들은 음악적 수련을 통해서 맑고 깨끗한 소리를 오히려 거칠고 탁한 소리로 만드는 혹독한 훈련을 하여 독특한 음질을 갖게 된다. 그래서 판소리 창우들의 소리는 독특한 맛이 있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데가 있는 음질을 갖게 된다. 너무 맑기만 한 양성도, 너무 거칠기만 한 떡목도 피하면서 충분히 우러나는 슬픔이 깃든 ‘곰삭은 소리’를 구사하게 된다. 특히, 너그러움이 깃들면서 슬픔이 베인 소리인 애원성을 구사하게 된다.
창자들 중에서도 빼어난 소리를 가진 명창들은 자신의 성음의 빛깔을 내고, 이를 다양한 기교로 표현해내는 득음의 경지에서「춘향전」의 이런 흥한의 감성미를 향수자에게 제공하게 된다. 그들은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서의 상승과 하강, 맺힘과 풀림을 통한 정서적 리듬의 굴곡을 사설, 조와 장단, 성음 등을 교묘히 운영한다.

4. 20세기에 확장된 현대 춘향전

    「춘향전」은 열녀이야기와 암행어사 이야기로 기본으로 삼고 있지만, 후대로 오면서 판소리를 거치면서 극적으로 세련된 구성과 재담 풍자 등의 기법을 구사한 사실적인 대화 등으로 사설의 맛과 더욱 갖추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판소리 광대들은 판소리의 소리극적인 특성을 살리면서 향수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삽입가요를 통한 서정성 덧보태어 극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서정성과 서사성 교묘히 배합하는 경지에까지 나아가게 하였다.
이런 특성으로 인하여 20세기의 신문학기에 접어들어서도 서구예술의 거친 바람도 견디어내면서 중단 없는 재창조와 성숙을 이룩한 전통예술이 되었다. 「춘향전」은 소설과 판소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소설, 창극, 한시, 잡가, 단가, 대중가요, 신극, 마당극, 영화, 오페라, 뮤지컬, 신무용, 시조, 가곡, 시나리오,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양식과 매체를 통해 지속적 창조를 거듭하고 있다. 엄청난 재창작을 통한 끊임없는 변모와 성숙을 거듭해 왔다. 이처럼 「춘향전」은 명맥만 유지한 고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런 다채로운 예술 양식으로 재창작되면서 자신의 예술적 생명력을 더욱 굳건히 해오면서 대표 고전예술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만큼 「춘향전」은 닫힌 양식으로서가 아닌 여러 예술 양식과의 접목을 통하여 춘향예술로 성장의 역사를 지속시켜온 것이다.
이런 재창작의 한 예를 영화 영역에서 살펴보자. 「춘향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영화로도 자주 제작되었다. 양식과 기법의 변모 때마다 춘향전이 그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영화사는 춘향전에 의해서 한 단계씩 발전하게 되었다고 할 만하다. 즉, 최초의 극영화, 무성 영화에서 토키 영화로 발전하면서 번번이 기록적 성공을 거두며, 영화의 시작과 중흥에 기틀이 되었다. 1922년의 「춘향전」은 일본인 하야까와가 동아문화협회를 만들어 내놓은 첫 작품이다. 1935년의 「춘향전」은 일본인 분또의 출자로 이명우 감독이 만든 최초의 발성영화다. 1936년에 나온「그 후의 이도령」과 1955년의 그 후의 「춘향전」은 이규환 감독의 작품이다. 1960년의 「탈선춘향전」은 이경춘 감독이 만든 패러디화 한 첫 작품이며, 1961년에는 두 편이 제작되었는데, 「성춘향」은 신상옥 감독의 최초의 총천연색 씨네마스코-프로 제작하였고, 「춘향전」은 홍성기 감독으로 천연색,선민스코-프로 제작하였다. 또, 1963년의 「한양에서 돌아온 성춘향」은 이동훈 감독의 작품이고, 1968년의 「춘향」은 김수용 감독의 작품이다. 1972년의 「방자와 향단이」는 사업가들의 이야기로 바꾼 두 번째의 패러디화한 춘향전이다. 1976년의 「성춘향전」은 박태원 감독의 작품이며, 1986년의 「성춘향」은 한상훈 감독의 작품이다. 춘향전에 역사상 가장 긴 공백 끝에 제작되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새로운 천년을 여는 태흥영화 주식회사의 작품 「춘향뎐」은 지난 세기의 희비를 딛고 어사 출도의 환희로 새 시대를 열고 21세기의 여명을 밝히는 영상미학의 행사라는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지난 세기는 강제 개항과 쇄국, 망국과 의병, 식민과 해방, 전쟁과 분단, 서구문화와 민족문화, 최근의 경제적 고통과 극복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민족사의 흥한을 담고 있다. 민족의 고전으로 함께 한 춘향전이 지닌 흥한의 미학은 바로 이 민족이 겪어 온 아픔과 기쁨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춘향전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춘향뎐」에서 우리는 질적 변신과 성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다. 동굴의 시련을 이겨낸 단군 신화처럼, 사랑을 위해 죽음을 넘어서며 기다린 춘향의 한양낭군은, 우리에게 있어 한 세기를 이겨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천년 벽두의 해맞이와 같은 것이다. 춘향과 이도령의 ‘이팔청춘 열 여섯, 어화둥둥 내 사랑’은 작게는 한 개인이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지켜 그리운 사람과 완전한 만남을 이룬 이야기이라면, 크게는 분단의 아픔을 녹이고 나아가 낡은 역사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세상을 만나기 위한 희망찬 만남의 눈부신 이야기이다. 영화 「춘향뎐」은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의 소리로 녹여낸 이 시대의 고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소리의 감동과 고전의 지혜를 통해 재미는 물론 관객의 내적 변신과 질적 성장을 일깨워줄 영화이다.

5. 21세기 춘향전이 나아갈 길

  이제 「춘향전」 의 향수는 극적인 서사의 표층적인 이야기만 따라 향수하던 하던 방식을 뛰어넘어 극적인 서사나 삽입가의 이면에 있는 심층적이고 중층적 의미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학술적인 뒷받침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춘향전」의 깊은 의미나 흥한의 정감은 평범한 대중문학이나 예술과는 달리, 이 작품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지성적이고 고전적인 의미를 고급 향수자들은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춘향전 향수자들의 수준 향상은 춘향전에 담긴 다양하고 중층적인 의미를 사랑, 절개라는 평범하고 대중적인 의미 이상의 차원에서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춘향전은 다른 판소리 작품들과는 위상을 달리한다.
또, 춘향전 향수자들은 단 한번의 감상만으로 이 작품이 지닌 예술성을 제대로 이해하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향수자로서의 독자나 청자는 어린 시절에 느낀 의미와 장년 또는 노년이 되어서 느끼는 의미가 달라지고, 향수자의 지식수준에 따라 춘향전의 의미는 각기 빛깔을 달리한다. 이처럼 향수의 위상과 태도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창조적인 반향을 제공하는 춘향전이기에, 춘향전은 줄거리를 아는 향수자, 향수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도 춘향전을 거듭 거듭 즐기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춘향전에는 그늘과 빛이 공존하기에 빛에서 본 그늘과 그늘에서 본 빛을 향수자 나름대로 의미의 선택과 배제를 자유롭게 할 수가 있다. 극적인 서사구조로 보아도, 춘향전에는 절정만이 우리의 정서를 정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장면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장면마다 정서적인 빛깔을 달리 하고 있다. 특히, 전반부와 후반부의 결말에서는 한과 흥이란 대립적인 정감과 향취를 제공한다. 그만큼 세상의 변함을, 우리 마음의 달라짐과 달라지지 않음을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지혜로운 삶의 의미를 만나게 해준다.
「춘향전」이 지닌 또 다른 특성은 유동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점에 있다. 판소리로서는 판소리의 맛을 낼 줄 알고, 소설과 한시로서는 그 나름의 맛을 낼 수 있듯이, 양식에 따라서, 시대나 취향에 따라서 기묘한 변신을 할 수 있는 원리를 구비하고 있다. ‘천의 얼굴’을, ‘만의 빛깔’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이 있다. 이것 또한 ‘음양의 미학’을 기저에 담고 있는 춘향전의 고전다운 생명력에 해당된다. 그래서 춘향전을 하나의 닫힌 소설 텍스트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고정시켜 놓은 텍스트의 내적 구조나 의미만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수준 높은 춘향전 짓기나 읽기는 아니다. 이런 개방적 속성은 판소리로서는 판소리의 맛을, 소설로서는 소설로서의 맛을 낸다. 한시로서, 잡가로서, 또는 오페라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창극으로 시대의 취향이나, 연령별, 세대별 취향에 따라 기묘한 변신을 하며 새로운 맛을 제공한다. 이 천의 얼굴을, 만의 빛깔을 감상할 때,「춘향전」 감상은 비로소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다.
「춘향전」은 표현 매체나 작가나 연출 의도에 따라 항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용한다. 춘향전의 이러한 변용에는 이 작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나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가 은연중에 개입한다. 그 까닭은 춘향전의 재형상에 동참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인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춘향전이란 고전이 지닌 전통성이나 당대적인 상황을 고려해야만 향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춘향전의 시대적인 변용이나, 작가적인 변용 등에서 질적인 성숙만이 아니라, 원래의 생명력을 손상시키는 경우도 일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개인별, 시대별 유행이나 개성에 따른 변용을 함께 조감하고, 춘향전의 역사적 상황까지 감상할 수 있는 품격 높은 향수자가 다수를 이루게 된다면, 춘향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성숙과 발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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